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치바 테츠야 (문단 편집) == 여담 == * 그의 작업실 벽에는 그가 그린 커다란 [[야부키 죠]]의 그림이 있다. [[파일:hCdJYYA-1200.jpg|width=400]] *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친한]]파로 한국을 몇차례 방문했다. 2005년 부천만화행사 당시 다소 몰지각한 팬이 공식 공개 인터뷰 자리에서 그에게 당시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혐함류라는 만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다소 몰지각한 질문을 한적도 있다. 새까많게 후배인 인물들이 그린 치바 테츠야 정도 되는 거장이 알지도 못한 작품에 대해 그의 작품세계나 예술관에 대해 논해야 하는 자리에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작품이지만 단지 일본인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언급한 것. 치바 테츠야는 무척 곤혹스러워 하며 '그런 만화가 있는 줄은 몰랐다. 여기에서라도 그 만화를 보고 상처받았을 한국인들에게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공식석상에서 머리를 숙인 적도 있다. 앤솔로지 '''해협 저편으로'''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일러스트 한 장뿐이어서 아쉽다. 일러스트는 한국과 일본의 전통복장을 한 소년들이 악수를 하는 장면. 작품 제목은 '바람을 담아'.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평화롭게 끝났다는 것을 보고 "오늘은 북쪽과 남쪽이 악수했네요. 저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전쟁이나 비극을 피할 수 있었구나 라고."라고 기쁜 듯이 이야기했다고 한다.[[https://spice.eplus.jp/articles/186333|#]] *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있다. 지금까지의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청년 만화가의 발굴을 위주로 한 [[코단샤]] 주최 [[https://ja.m.wikipedia.org/wiki/%E3%81%A1%E3%81%B0%E3%81%A6%E3%81%A4%E3%82%84%E8%B3%9E|치바 테츠야 상]]이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시상하고 있다. 신인 시절 이 상을 받은 유명 작가로 [[후쿠모토 노부유키]], [[곤 사토시]], [[아마노 아키라]], [[이와아키 히토시]] 등이 있다. *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에도 관심이 높고, [[검열]]에 반대한다. 도쿄도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에 관한 조례 개정 문제에 관해서도 몇번이나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어, 특히 당시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진행하는 "비실재 청소년" [[규제]]에도 부정적이었다. * [[더 화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죠지는 치바 테츠야에 대해 "어제도 만났지만, 계속 쫓아 온 동경의 존재네요. 만화가중에서는 [[신]]같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https://news.yahoo.co.jp/byline/kimurayu/20200117-00157468/|#]] * [[소년 점프]]를 싫어한다. 동생 치바 아키오가 연재하다가 견디지 못해 자살했기 때문.([[조울증]]이 약간 있었다고 한다.) 치바 아키오는 주간 소년 점프에 [[플레이볼]]을 연재했고, 월간 소년 점프에 [[캡틴(만화)|캡틴]]을 연재했는데, 그 중 캡틴은 '''소년 점프 계열 만화로는 최초로''' [[쇼가쿠칸 만화상]]을 탄 명작이다. 이 2개 다 애니화가 되었다.(플레이볼은 사후 애니화) * 한국 만화사의 [[흑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치바 테츠야의 [[리즈시절]]에 그의 작품을(스토리 및/또는 캐릭터 디자인을) 무단으로 표절했던 이들이 많았다. [[이두호]] 화백조차도 초창기에는 치바 테츠야의 캐릭터를 보고 그렸을 정도다(까목이, 뭉치 등). 물론 머지 않아 이두호 화백만의 한국적인 화풍을 일궈냈지만… 또한 치바 테츠야가 일본에서 열혈 스포츠 만화라는 장르로 인기몰이를 하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신인 만화가들이 이 장르를 통해 데뷔하였으며, 이들의 작품에서 치바 테츠야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독고 탁의 [[이상무]], 야구 만화 전문이던 이우정, 신인 시절엔 줄창 스포츠 만화만 그린 [[허영만]] 등이 대표적. * 신인 시절에 치바 테츠야를 배낀 작가로 [[학습만화]]로 유명한 [[이원복]]이 독일에 유학가서 유럽 만화 그림체로 만화를 그리기 이전에는(그 과정에서 [[아스테릭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하기 '''전에'''[* 극 초창기에는 미국만화 스타일로 만화를 그렸지만(이것도 습작인 수준이다) 내공이 쌓이면서 일본만화 그림체로 만화를 그렸다. 그러다가 귀국 후인 1980년대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소년 한국일보에 연재하면서부터 유럽 만화 스타일로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그린 만화 그림체가 치바 테츠야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529500002|표절이었다]]. 단순히 그림체만 베낀 것만 아니라 등장인물 중 일부도 치바 테츠야 작가의 것을 베껴왔다. 1, 2, 3과 4, 5, 6(오뚝이 대행진)의 서브 캐릭터 3명을 차용하여 자기 키보다 큰 옷을 입는 이시관, 그의 친구 김병호, 여친 뚱순이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이들은 1973년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된 ‘미니바람 꽃구름’(클로버문고로 발간), 외전인 ‘수나의 일기’, 1975-1981년 [[새소년]] 연재작이자, [[먼나라 이웃나라]]의 원전이 되는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에 출연시켰다. 이후로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유럽만화 그림체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뒤로는 치바 테츠야의 그림체로 그린 만화책은 [[사랑의 학교(만화)|사랑의 학교]]를 빼고 전부 폐기시켰다. * 2014년 4월 난봉꾼 마츠타로가 TVA화되었다. *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그리는 것 이외에는 여러가지 재능이나 능력이 없어서 일본에 돌아온 이후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곧바로 해고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 어렸을 때 너무 배고파서 비누를 먹은 적이 있는 데 다행히도 부모님이 그걸 발견해서 비누를 토해내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본인 왈,배고파서 그런지 몰라도 맛있었다고 한다. * 전쟁으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에 대한 기억이 흐트러지는 것을 안타깝게 느껴서 자신의 경험을 만화화할 것을 결의하고 2016년부터 소학관의 빅코믹에서 ひねもすのたり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기고했으며 2018년부터는 단행본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